상설전시 《이것이 한국화다 This is a Korean painting》展 2017-11-06T13:56:48+00:00

Project Description

《이것이 한국화다 This is a Korean painting》

기획 | 김연진 (KMCA 관장)

참여작가 | 박생광, 전혁림

 

|  1981년 이후 박생광 작품에 나타난 한국 문화의 미적 구현  |

1981년 백상미술관에서 열린 박생광의 개인전에 전시된 그림들 – 대표적으로 <무녀>(1981), <토함산해돋이>(1981), <당산>(1981) – 등은 한국 미술계에 커다란 충격과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이들이 그의 작품의 의의를 “한국 미술의 채색 전통의 부활”에서 찾았고 그 같은 점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그전까지 한국 동양화 전통의 주류는 수묵화로 사실적으로 묘사되지 않은, 관념적으로 인식된 자연세계를 그 안에 담아왔다. 반면 박생광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강렬한 색의 세계는 한국 동양화의 주류 바깥에 존재하는 토속적 한국 채색 전통 – 불교사원의 벽화와 건축물의 장식 그리고 민화 – 로의 회귀를 보여준다. 박생광은 동양화의 전통적 주제들 즉 산수와 화조를 묘사하는 데 있어서도 특유의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불화나 무속을 많이 다루고 작품 자체가 전통적인 동양화 채색법을 떠난 생소한 것이라 나를 기인처럼 여기거나 환속한 중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러나 나의 채색은 화조나 산수를 하던 초기부터 병행해 오던 것이고 한국의 전통미술 가운데서 그런 극채색의 소재를 찾다 보니까 단청과 탱화의 기법을 택하게 된 것입니다.”

‘한국 미술의 채색 전통의 부활’은 1981년 전시를 기점으로 처음 나타난 기법이 아니라 그가 일생의 작품세계에서 계속 추구해온 것이다. 박생광의 작품에 담긴 주제들, 즉 무당, 당산, 부처는 한국 동양화의 전통에서 다뤄진 바 없었다. 박생광은 이른바 동양화의 전통적 주제이자 한국의 아방가르드 작가들에게도 애호되던 주제인 자연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을 연 것이다. 박생광은 무속과 불교라는 한국 전통 문화를 주제를 통해, 수직 기립한 자세의 인간이 세계를 지각하는 구도에서 벗어난 새롭고 특징적인 화면 구성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1981년 박생광의 화폭은 마치 그 위에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는 듯 속속들이 한국적인 전통 문화를 담아 내는 “flatbed”와 같은 화면으로 전환된다.

박생광에게 화면은 시각적으로 지각된 자연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무속과 불교에서부터 전통 건축물과 사물들을 망라하는 문화의 핵심을 담아내는 작업장이 된다. 1981년 전시된 작품들 중 위에서 언급한 <무녀>, <당산>, 그리고 <토함산해돋이>와 같은 작품은 이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이들 작품에는 한국문화를 상징하는 사물들이 세심히 배치되어 마치 어떤 물질도 빛도 통과되지 않는 단단한 재질의 종이 위에 도안된 듯 보인다. 박생광의 화면은 사람이 서서 눈으로 지각하고 경험하는 그런 시각적 세계관을 반영하지 않는다.

1984년 박생광은 그의 가장 대표적인 걸작인 <명성황후>를 완성해 문예진흥원 전시회를 통해 대중에 선보이는데, 여기서 1981년 전시되었던 전작들보다 발전하여 그림을 수평적 화면으로 구성하였다. 박생광은 고급이건 하급이건 한국 문화를 상징하는 사물들로 가득 채워진 평면을 작업실 바닥에 펼쳐 놓고 진한 주홍색과 노랑, 파랑의 강렬한 채색으로 채우며 작업하였다. 화폭을 방바닥 전면에 깔아 놓고 작업하기 때문에 그는 그림을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두지 않았고, 그래서 관망하거나 관조하는 과정은 모두 제외된다.

박생광은 5000년 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한국의 문화를 그의 그림 속에 담고자 했으며, <무녀>, <당산>, 그리고 <토함산해돋이> 역시 역사화로 간주할 수 있다. 그가 다룬 무속과 불교의 주제는 다름아닌 한국의 초기 역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주제는 관념적 자연세계를 주된 주제로 삼았던 한국 동양화 전통과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지식인들의 사색의 대상이 되었던 전통 동양화와는 달리 이런 주제를 담은 그림을 다른 관객을 염두에 두고 다른 공간에서 감상하도록 의도되었다고 보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박생광은 한국 문화와 역사를 주제로 삼는 그림에 새로운 미학을 정립하였다. 그는 종교 벽화에서 흔히 보여지는 빨강, 주황, 노랑, 파랑이라는 강렬한 채색을 대담하게 운용하였을 뿐 아니라 작품의 크기를 기념비적인 것으로 확장하였다. 그의 대작들은 어떤 공적인 목적, 즉 무언가를 기념하거나 어떤 것을 장식할 목적으로 정부의 의뢰를 받아 제작된 것이 아니며, 일반 가정에 진열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미술관이라는 전문적인 전시 공간에서 미적으로 인지되고 경험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  통영의 화가 전혁림, Modern Space with Rhetoric: 바다의 심연성을 담은 평면화  |

전혁림의 대작 앞에 서면 캔버스의 크기보다 인상 깊게 다가오는 것은 그 평면성, ‌’Frontal Plane’ 즉 정면성이 두드러진 화면 구성이다. 평평한 화면 위에 색채 자체가 의미를 가지고 일정한 법칙을 유지하며 배열되는 것은 20세기 서구 회화에서 흔하게 보이는 화면 구성이다. 이런 화면을 일명 ‘Modern Space’ 라고 하며 20세기 중반 미국 추상 표현주의 화가들에게서 그 절정의 형상을 발견한다.

우리나라의 미술 역사가 일제 식민지와 6.25 전쟁으로 근대사의 단절을 겪은 것은 사실이다. 모더니즘의 특히나 ‘ High Modernism’ 의 대변인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1909-1994)가 주장하였듯 현대 미술은 미술의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그 속에서 더 발전된 양상으로 나아가는 것, 그래서 현재 당대의 미술이 그 처한 상황에서 최선으로 여기는 역사주의적이며 진보주의적 시각에서 본다면 한국의 모더니즘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혁림은 우리시대의 미의식에 적합한 예술이 곧 우리의 모더니즘이라 생각하였다.

전혁림의 화면은 단순한 추상적 평면성을 거부한다. 그 규모가 압도적인 전혁림의 화면은 단순하고 중성적인 구성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매우 활동적이며, 그것을 바라보는 관람객을 삼킬 듯 강렬하다. 화면에 펼쳐진 이미지는 마치 관람객을 바다에 초대하는 듯한 느낌은 주는데 그 바다는 무한히 펼쳐진 공간이다. 따라서 필자는 충무항 혹은 한려수도라 이름 지어진 화면을 바라보면서도 관객은 지역성을 벗어난 바다의 무한하고 보편적인 공간성을 경험한다. 이 같은 특징은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의 오베르(Auvers)나 퐁투아(Pontois) 혹은 에스타크(L’Estaque)의 풍경화에서 보이는 평면적이나 한정적인 ‘Modern Space’ 와 구분된다.

전혁림의 캔버스가 가지는 물리적 공간은 화면과 일치하며 평면성을 초월한 심연의 깊이를 보인다. 이렇듯 재현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화면에 담아내는 성취를 이룬 작가가 바로 전혁림이다. 전혁림은 위에서 언급한 1989년 윤범모와의 대담에서 자신의 작업을 인간의 유한성 혹은 보편적이고 원초적인 운명적 힘에 저항에 비유하였다. 그의 말을 따오자면 “나의 작업을 통해서 죽음을 극복하고 있다. 따라서 내 작품은 생의 노래라고도 부를 수 있다. 나는 작품 속에다가 인간의 영원성을 투여시키고자 한다(…).”

1989년 당시 전혁림이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저항을 선언하였다고 한다면 현대 2005년 작업에서는 이런 유한성을 극복하여 초월한 작업을 보여준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지니는 유한성은 캔버스의 물리적 공간성인 평면성에 비유될 수 있으며 이 공간의 평면성에 화면의 무한성과 일치시켜 관람객으로 하여금 바다의 심연의 깊이를 맛보게 하였다. 따라서 전혁림의 화면에는 물리적 지지대(ground)가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천호가 넘는 규모의 화면은 수직과 수평으로 팽창하며 끈이 없는 무한대의 바다를 표현하였다. 이 끝이 없는 바다는 끝이 없는 세상의 의미로도 확대 해석할 수 있다. 이 끝이 없는 세상을 화면에 단단히 붙여 표현하여 단순히 느낄 뿐 아니라 경험하게 한다.

 

Painting as Object (Project-projection-pure Object)

전혁림은 자신의 작품에서 색의 의미를 재미, 환희, 감동이라고 표현하며 색채가 없는 세상이 살아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색이 없는 그림은 그림이 아니라고 하였다. 특히 현대와 같이 시각적 이미지가 대량생산되는 시대, 이러한 민감한 색채의식의 계발은 이 시대의 미의식을 꿰뚫어 본 전혁림의 혜안을 드러낸다. 이는 전혁림이 자신의 작품세계에서 가장 중요시한 색채를 캔버스 이외에 도자 및 목기 등에 적극 적용한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300개의 목기가 모여 하나의 작품을 이룬 <새 만다라>는 생활 기기와의 연관성을 보였던 기존 도화나 목기화와는 달리 보다 확대된 영역, 즉 확장된 공간성을 지닌다. 이 작품은 추상적 형태를 지니며 끊임없이 반복된 단위로 이루어져 미니멀리즘적 인상을 강하게 전달하는 설치미술로도 볼 수 있다.

각 100개씩 정사각형의 프레임 안에 표구되어 세 개의 프레임이 모여 수평적 직사각형의 모습을 보이며 측면적 팽창이 강조된 화면인 듯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독특한 화면 속에서 전혁림은 Picture가 아닌 Painting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새 만다라>는 어떤 것을 반드시 형상하는 것(Painting)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는 작가 자신의 시각적 성명서(Painting)인 것이다. 이 작품이 시각적 성명서인 Painting으로 볼 수 있는 가장 뚜렷한 이유는 이 작품 전체를 압도하는 색채이다. 어찌 보면 사각 목기 안의 형상은 색채를 위한 모티브 정도로 이 작품을 시각적으로 압도하는 것은 색채인 것이다. 이렇듯 적극적으로 회화의 의미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그러나 회화와 조각의 미묘한 경계선에 자리 잡고 있다.

<새 만다라>는 어찌 보면 회화 혹은 그림물감이란 매체 자체를 실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페인트라는 매체를 새롭게 작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각 목기라는 이차원적이거나 평면적인 화면이 아닌 입체적인 화면 공간으로 색채로 채워진 부분과 채워지지 않은 부분으로 구분된다. 회화의 화면상에 여백 혹은 빈 공간에 대해 화가가 지니는 일반적인 공포감은 찾아 볼 수 없다. 색채가 존재하는 공간과 색채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의 반복적 출현은 이 작품을 조각품과 연결 짓는 하나의 고리 역할을 한다. 또한 프레임으로 둘러싸여 회화적 공간적 특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동시에 입체적 목기의 앞으로 돌출된 화면은 이 작품의 조각적 특성을 강조한다. 회화의 내재적 공간성과 달리 조각은 공간 속에 존재감을 드러내며 동시에 조각이 위치한 공간을 재창조 하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텅 빈 공간에 조각품이 설치되면 그 공간 속에 조각은 거주하는 동시에 조각의 입체적 존재감은 그 거주 공간을 끊임없이 변화시킨다.

이렇듯 외부 환경과 끊임없이 교류하는 조각품의 특성은 작품<새 만다라>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회화작품의 색채와 조각품의 공간성의 융화는 이 작품에 순수한 오브제의 성격을 부여한다. 따라서 <새 만다라>는 회화이건 조각이건 간에 전통적 결정론적인 구분이나 특성에서 자유롭다. 전혁림은 이 작품을 통해 어떤 형상을 묘사하지 않고 관람객에게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색채라는 추상적이나 동시에 감각적인 시각적 언어로 표현한다. 또한 작가와 작품 그리고 관람객으로의 공간적 확장을 통해 이를 둘러싼 환경에 그만의 색채를 부여한다. 그리하여 그가 소망하는 색채가 살아있는 세상을 구현코자 한다. 이를 위해 전혁림은 <새 만다라> 라는 순수한 오브제를 창조한 것이다.

 

김연진 관장 ㅣ 대표

K현대미술관 KMCA